수필

낙수효과

aspakang 2015. 12. 29. 17:58

대학시절 학보사 기자로 활동한 적이 있었다.


당시의 기억이 몇가지 남아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참선수행승과 만남이었다. 토요일 오후였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불교학생회의 초청으로 참선수련을 오래한 스님의 강연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강연이 끝나고 학보사기자실로 돌아 오면서 느낀 5월의 따사로운 햇살과 무성한 초록의 나무들 사이로 헤맑고 티한점없이 깨끗했던 스님의 얼굴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던 기억이 새롭다.


소개자의 설명에 의하면 스님은 어느 깊은 산속 동굴속에서 솔잎과 쌀가루만을 낙숫물에 말아 먹으며 부처님처럼 6년간 면벽수련을 했다는 것인데 30대후반의 나이에 그렇게 온화하고 청량한 얼굴을 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회색의 승복위에 파르라니 깎은 머리와 동그란 하얀 얼굴.....아! 내가 지금까지 배워왔던 영양학의 온갖 이론은 한갖 잡스런 지식에 불과했던가? 치열한 구도의 열정은 속세의 알음알이를 무색케 만든다.


이 번다한 세속의 삶에서 전혀 다른 의미로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쓰이고 있다. 낙숫물이란 결국 지구의 중력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인데 위에 물이 없다면 아래로 물이 떨어질 리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부자가 돈을 많이 벌면 만유인력처럼 아래로 자연스럽게 흘러서 빈자들의 주머니를 풍족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일견 타당한 이론이다. 우리 속담에도 부자집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과도 일맥 상통하는 말이다.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제도가  전세계를 휩쓸어 우리의 일상사에 영향을 미친지도 한 세대가 되었다. 애초 우리나라는 정부주도의 경제정책과 재벌위주의 성장정책을 펴온 정부주도 자본주의내지 관리 자본주의였다. 그런데 97년말에 터진 외환위기, 소위 "IMF사태"는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한국경제에 불어닥친 태풍이었다. 이 태풍이 그때까지 보호주의 무역기조와 정부주도의 경제개발계획유지하고 있던 이 나라의 제도와 정책을 날려 버렸다. (그분의 수많은 공적과 치적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얼마전 서거하신 고 김영삼대통령을 높이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덕분에 우리는 구조조정이란 미명하에 모든 노동자의 상시해고와 비정규직의 양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와국자본의 자유로운 출입을 반강제적으로 수용하게 되었다. 이제 신자유주의 이론이 금과옥조처럼 받들어 지고 일상화된지도 정확히 18년이 되었다. 그간 우리사회가 많은 경제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되어 부자나 재벌기업들은 더 부유해지고 대부분의 회사원들이나 노동자들의 소득은 답보상태이거나 오히려 하락하였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그럼 낙수효과는 어떻게 된 것인가? 부자들의 주머니가 불룩해졌다면 낙수처럼 자연스럽게 아래로 흘러야 할텐데 그돈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요즘처럼 돈이 넘쳐나 이자율도 싸다면 더 많이 투자해도 되거나 투자수익률이 낮다면 본인의 살아 생전 욕망충족을 위해 최대한 많이 소비하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 아닌가?


불행히도 필자가 생각하기에 낙수효과 이론은 맞지 않은 것 같다. 필자가 만난 부자들의 행태는 그 반대였다. 부자들에게 돈을 더 많이 모여서 돈가치가 더 떨어졌다. 그 가치 떨어진 돈을 이 사회를 위해 내 놓거나 세금으로 내는 것은 더 싫어한다. 그들은 말하길, 이제는 이자율도 낮고 투자 수익율도 낮기 때문에 100세까지 건강하고 풍족하게 살아가려면 종전에는 10억만 있으면 되지만 이제는  20억의 현찰이 있어도  모자란다고 강변한다. 더 자린고비처럼 처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놈의 낙수효과, 인간의 수명이 길어져서 안맞는 것인가? 아니면 늙어도 자녀에게 기댈 수 없는 불효사회의 문제인가? 오바마대통령이 분수효과를 주장했다는데 이는 품이 많이 들어가는 방식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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