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딸의 결혼, 그후

aspakang 2015. 12. 22. 15:41

귀여운 딸, 딸을 시집 보낸지도 벌써 석달이 더 지났다.


결혼식이 있던 9월 초만해도 날씨가 따뜻했는데 이제는 산과들의 꽃들과 나무들이 시들고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있다. 어제는 비가 오더니 오늘은 맑기는 하지만 기온도 많이 내려가서 얼음과 눈꽃까지 피었다. 바야흐로 조락을 지나 새봄을 기다리는 동면의 계절로 접어들었다.


결혼식의 번잡함. 신혼여행 후의 인사, 신행, 사돈간의 인사, 애들 살림살이를 확인등의 절차도 끝나고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살림을 나고 이제는 우리 부부둘과 얼굴도 잘 안 보이는 아들만이 덩그렇게 남았다.


같이 있어도 직장생활을 하느라 그렇게 자주 얼굴 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침저녁 문안 인사를 받고 주말이면 같이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고 아파트앞 공원도 같이 거닐면서 인생사와 문학과 철학등을 논하기도 했던 딸. 부인이나 아들보다도 나와 더 싸이클이 맞았고 비록 언제나 내 의견을 따라 준 것은 아니지만 가장 가치관과 인생관이 비슷했던 딸. 작은 키마저 나를 닮은 것을 보니 아마도 DNA도 나와 가장 비슷하리라......


하지만 이제 딸은 내 곁에 없다. 이제 나의 가족 아니다. 주소마저 사위와 같이 사는 집으로 옮겨 가서 경기도 주민이 되었다. 비록 나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직장이 있고 경기도라고 하지만 분당이라 지리적으로 그렇게 멀리에서 살고 있지도 않다. 하지만 심리적 거리는 경기도가 아니라 제주도만큼 아니 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다.


그리운 마음에 딸의 방을 들어가 본다. 아직도 그 아이가 쓰던 펜과 보던 책과 입던 옷, 화장대에는 화장품까지 남아 있다. 시집간지 몇년된 조카딸애가 하는 말이 자기도 친정집에서 자기짐 다 가져가는데 일년이 걸렸대나.... 아마 세실이도 자기 짐 다빼는데 사계절은 걸릴 것 같다. 책상에 앉아 스탠드를 켜고 그 아이가 쓰던 오래된 노트북을 켜 본다. 아직 잘 돌아간다. 덕분에 딸에게 오랫만에 이메일을 보내 본다.


문득 인생은 짐을 만들고 짐을 빼는 과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태어났을 때 자기짐을 자기가 만들 수 없듯이 인생하직하면 자기 손으로 자기짐 뺄 수 없다. 위대한 사람은 자기짐을 많이 남겨놓는 것이 위인의 유품으로 본존되고 가치도 있어 세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나같은 장삼이사야 짐이 적을 수록 좋을 것이다. 다만 딸과의 추억은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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