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이기심에 대해 내 나름대로의 생각과 의견을 피력해 왔다. 오늘날 이기심을 사실상 이 세상과 사회를 이행하고 설명하는 키워드이자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간의 특성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이기심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사람이 아니거나 성인이다.
하지만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이기심은 근대이전에는 터부시되고 타기되어야 할 악으로 규정되었다. 그래서 이기적 인간이란 마치 악인과 동격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었지 않나 싶다. 동양, 특히 유교를 숭상하는 우리사회에서는 이기적인 인간은 소인으로 취급되었다. 공자님 말씀에 "나물먹고 물마시고 팔베게하고 누웠어도 그 속에 행복이 있으니 불의로 얻은 부와 귀는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이 허망한 것"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양 중세에도 이러한 사고가 일반적이었다.
지리상의 발견이후 근대에 들어와서 특히 서양이 산업혁명기에 접어든 18세기에 장기간에 걸쳐 법과 윤리와 도덕, 심지어 종교적 교리에 의해 억압되고 제지되었던 인간의 이기심이 해방을 맞이하였다 마치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롭게 날시작했다. 경제학의 비조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 나오는 너무나도 유명한 경구는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 이상의 신성한 절대진리로 받아 들여진다. " 우리가 매일 신선한 빵과 고기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제빵업자나 푸줏간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기심때문이라고....."
맞는 말이다. 제빵업자가 아침일찍 일어나 밀가루를 반죽하고 빵 모양을 성형하여 장작불로 데웠을 오븐에 넣고 구워낸 따끈한 빵을 진열대에 올리기까지의 수고로움을 그의 자비심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가 자비심이나 의무감에 의해 빵을 만들었다면 동일한 재료를 가지고도 아마도 훨씬 맛없는 빵을 만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주위에 경쟁하는 제빵소가 있었다면 자비빵이나 의무빵은 진작에 이별을 고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더 맛있고 더 가성비 좋은 빵을 만들어 내기 위한 무한경쟁은 오늘날의 물질적 풍요를 만들어 내었고 그토록 논리적이고 가슴뛰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다. 오늘날 일부 국가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체제는 맑시즘이 아니라 권위주의내지 독재주의 체제다. 우리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미덕인 신자유적인 자본주의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이기심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본성일까? 우리가 오랜 세월에 걸쳐 동물에서 진화해온 존재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무한한 이기심은 개체본존과 종족본존 본능의 근대적인 돌연변이가 아닐까? 그 옛날 음식물은 보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돈이나 재물 역시 권력자나 약탈자로 부터의 보관이나 유지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필자가 최근에 어는 책에서 본 최후통첩게임은 이러한 이기심의 근대성을 잘 보여준다고 본다. 이는 1982년 독일의 경제학자 베르너 귀스(Werner Guth)가 사람들이 언제나 자신의 이익만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는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고안한 실험이다. 전통적인 고전경제학의 정의에 의하면 , 인간은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이익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 게임에서 귀스가 도출한 결론은 이기적으로 부를 추구하는데 여념이 없는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는 인간상으로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아직 산업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남태평양 원주민이나 산업화가 진행되지 않은 전통사회에서는 이기심보다는 오히려 공동체를 생각하고 이웃과 이익을 비교적 공평하게 나누려는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이기심의 끝없는 추구는 산업화되고 문명화되어 개인주의나 물질문명이 더 발받된 사회일 수록 사람들이 더 이기적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김심 추구의 끝은 인류문명의 공멸로 나타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