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가 봄이다. 삼라만상이 겨울의 칙칙하고 우중충한 색에서 벗어나 산뜻한 초록으로 옷을 갈아 입고 있다. 먼산에는 상록수 사이로 연초록의 활엽수잎이 안개가 피어나듯 뭉게뭉게 피어 오르는 것 같다. 출근길에 보이던 개나리꽃은 이미 져서 그 나무의 이름조차 알아 볼 수 없고 길가의 가로수 은행나무에서 파릇파릇 새싹이 돋고 있다.
봄의 색깔은 짙은 빨강색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눈속에서 핀다는 설중매의 붉다 못해 검붉은 색은 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견뎌내고 나온 것이라 더욱더 요염하다. 이어서 피는 산수유의 노란색은 마치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을 닮았다. 개나리의 노란 꽃은 어떤가? 따스한 봄날에 엄마닭을 따라서 나들이 나온 병아리를 연상케한다.
다음으로는 하얀 옥양목 목도리를 하고 마실나온 귀부인같은 목련이다 그 순백의 우아한 자태는 이 세상의 세파를 모두 견디어 낸 중년부인의 고고함이다. 수줍게 활짝 피어났다 한잎두잎 산화하는 모습이 아쉬움을 갖게 한다. 그리고는 벚꽃이다. 하나둘 꽃망울을 터뜨리더니 이내 아파트촌 전체를 분홍나비 같은 꽃잎으로 덮었다. 화려하고 장쾌한 모습이다. 더구나 꽃잎이 질때 바람이라도 불때면 그 황홀하고 신비로운 눈송이의 향연이란.... 일년에 한번만 맛 볼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화단에는 철쭉이 진분홍과 하얀 꽃봉오리를 밀어 올린다. 조금만 있으면 이들은 진초록의 이파리 사이로 멋지고 화련한 자태를 들어낼 것이다. 라일락의 눈꽃송이 같은 흰색은 환상적이다 못해 몽환적이다.
봄이 어찌 색깔로만 오랴! 필자는 꽃을 보면 가끔씩 그 줄기를 당겨 냄새를 맡아 본다. 매화의 은은한 향기는 옛선비들을 홀려 수많은 시인, 묵객이 그 오묘하고 신비로움를 노래했다. 라일락의 강렬하고 환상적인 향기는 중독성이 있어 한번 그 냄새를 맡으면 꽃주위를 떠나기가 싫어진다. 어디 냄새가 매화나 라일락 뿐이랴 클로버의 상큼하고 싱그러운 냄새는 맡으면 맡을수록 더 좋아진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노란 민들레에도 향기가 있고, 꽃대가 나와 햐얗고 앙증맞은 작은 꽃이 피어 있는 냉이꽃도 그렇다. 하다못해 자줏빛 초롱 모양을 한 할미꽃도 찬찬히 맡아 보면 느끼하면서도 독특한 향을 풍긴다. 아! 봄은 색과 향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