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새삼 우리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감하고 있다. 환자와 잠깐동안 식사를 같이해도 걸리고, 교회에서 같이 기도를 해도 감염되고, 심지어 악수를 해도 전파될 수 있다고 한다. 이러니 같이 만나서 식사를 할 수도 없고,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가서 죄를 빌고 사죄를 받아야 할 교회에도 가기가 꺼려지고, 만나면 반갑다고 하는 악수마저 주먹치기나 어깨마주치기로 대신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진다.
그간 너무나도 당연하게 주어졌던 우리의 일상들이 엄청나게 제약을 받고 있다. 마치 우리가 공기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깨끗한 마실물이 무한정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하던 지난 날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매일매일 미세먼지 농도에 따라 그날그날의 행동을 결정하고 일용할 양식을 구입하듯이 생수를 일상적으로 구매한다.
이제 우리에게 당연한 일상이란 없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상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자체가 엄청난 위협이 되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매일 접촉하고 어울리고 사랑을 나누는 상대가 언제든지 잠재적인 코로나 바이러스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이쯤에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에게 의지해서 살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중국우한에서 지난 연말에 시작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세계로 번지는데 6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언젠가 지국상의 도시들이 얼마나 항공편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지도위에 선으로 연결한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그물처럼 연결이 되어 있었다 정말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처럼 보였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면 할 수록 우리는 연결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이제 누구도 지구 반대편의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지구라는 조그마한(?) 행성에서 사는 인간들은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이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서, 아니 이 공동체에서 사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전체의 안전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던 지역은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서구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담했다. 아시아지역의 감염자수가 수백명 단위로 증가할 때 그들은 수천명 수만명 단위로 증가하고 사망자수 역시 그 배율로 증가했다.
독립적인 개인은 그 스스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이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자유의지를 강조하는 서구에서 이 사실이 역설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이 결국은 나애개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고독한 렌즈연마공이었던 서구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400여년전에 이미 이 반목과 불화의 시대를 넘어설 수 있는 철학적 혜안을 제시했다.
어떻게 인간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자유와 긍정이 넘치는 살만한 세상을 만들 것인가? 그가 긴 시간에 걸쳐 사색하고 고뇌한 신과 자유에 대한질문에서 얻은 결론은 "인간은 결코 홀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공동체적인 삶이 인간을 구원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