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두려움이 죽음의 공포를 넘어서면 인간은 그 생명을 끝내려고 하는 강력한 충동에 휩싸인다. 많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선택한다.인간적인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재산이나 소득이 없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그들은 그들의 존재가 더 이상 이 사회의 짐이 되거나 부채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성적인 사람들이다.
물론 인간은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자살을 시도하지는 않는다. 가장 많은 이유는 정신적인 것이다. 심심치 않게 뉴스에 등장하는 연예인들의 자살소식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인기있는 연예인을 우리는 스타라고 부른다.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다. 그들은 수많은 팬들의 사랑과 인기가 있었기에 스타가 되었다. 대중의 사랑과 열광은 그 강도 만큼이나 변덕이 심하다. 그러므로 스타가 저지르는 한순간의 실수나 스캔들로 인해서 그들의 인기는 날개없는 새처럼 추락하다. 그들은 사람들의 비난과 악플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곧 우울증과 무력감,고독감, 자괴감에 사로 잡힌다. 연예인만 그럴까? 많은 사람의 기대와 사랑을 먹고 사는 정치인들이나 일반인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은 자신이 쌓아왔던 명성이 추락하거나 자신이 대중에게 보여지던 모습이 실제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이 탄로나면 멘붕에 빠진다. 인간은 보여지는 모습과는 다른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과 보여주기 싶지 않은 모습이 있다. 그런데 그런 보여주기 싫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대중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까발려지거나 노출되었을 때 인간은 두가지 반응을 보이게 된다. 하나는 이 사실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자살은 그 사실을 긍정하는 속죄행위일 수도 있고 부정하는 항거행위일 수도 있다. 이것이 자살의 미학이다.
자살은 부모님이 주었거나 신이 주었다고 생각되는 생명을 스스로 끊는 살인행위다. 그래서 유교에서도 자살은 부모에게 가장 큰 죄를 짓는 불효행위로 간주해 왔고 기독교에서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신성모독이나 불경죄로 여겨진다. 불교 역시 육체의 고통을 끊는 자살은 정신에 더 큰 고통을 주어 그 윤회전생되는 업이 내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의 충동에 빠진다. 단순히 삶의 고단함이 죽음의 공포를 넘어선 경우만이 아니다. 인생의 허무함이나 무의미성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우리는 자살을 심각히 고려하게된다. 순간의 격정이나 분노, 좌절로 급히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을 시도하기 전에 많은 고뇌와 번민에 빠진다. 자살을 해야 할 이유와 더 살아가야 할 명분사이에 심각한 고민과 선택의 사색을 하게된다.
자살은 출구없는 대안을 가진 인간의 실존적 선택이다. 이는 종교적 순교를 위한 자살테러와는 다르며 대의를 위한 의거가 아니다. 제국주의 일본의 가미가제특공대는 더더욱 아니다. 이는 이성적 존재일반의 존엄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