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별적으로 타당하거나 옳다고 볼 수 있는 이론이나 현상이 전체적으로 볼때는 맞지 않거나 틀린 경우를 구성의 오류라고 한다. 혹은 부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을 전체에 적용하게 될 때 맞지 않거나 개인적으로는 타당한 행동을 모두 다 같이할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때도 쓰는 말이다. 경제학자 케인스가 말한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 좋은 예다. 불황에 저축을 늘리면 개인은 안전감을 느끼겠지만 모두가 다 저축을 하여 소비가 줄어들게 되면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1929년에 발생한 대공황의 극복을 위해서 케인스는 재정지출을 늘려서 유효수요를 진작시키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경제학의 비조인 아담 스미스는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으로 행동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력을 열심히 하면 사회전체적으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에 의해 조화롭게 발전하고 성장해 나가는 사회가 된다고 하였다. 제빵업자는 빵을 가장 맛있고 신선하게 만들어야 자신에게도 가장 도움이 되고 나아가 사회에도 도움이 될 것이며 푸줏간주인 역시 가징 신선하고 맛있는 고기를 가장 경쟁적으로 팔 수 있다면 그 업계에서 성공하고 또 사회 전체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제화공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점에서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주의는 인간의 이기심을 간과한 공허한 이론이었던 것 같다.
이 극단적인 이기심이 발로되는 곳이 우리나라의 교육현장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어린이들은 그야말로 태어날 때부터 치열하고 열심히 공부한다. 유아원단계에서 벌써 한글공부를 하고 유치원단계에서 외국어를 배운다. 초등학교에서 그 어려운 중학교 과목을 공부하고 중3이면 이미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모두 마스터한다. 고등학교 3년을 오직 좋은 대학을 가기위해 치열하고 열심히 노력한다. 정말이지 이기적인 노력의 끝판왕격이다. 그래서 우리사회 전체적으로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오늘날 우리 경제 현실에서도 이러한 구성의 오류현상이 많아 목격된다. 현 정권은 경제민주화를 외치면서 동시에 미래먹거리 확보를 위해 혁신산업 지원/투자를 모토로 삼고있다. 하지만 불황기의 급격한 경제민주화는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좋은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이게도 고용축소와 구조조정을 가져왔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은 자영업자들의 위축과 혁신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경제민주화와 혁신산업의 진흥은 상충되는 정책인지도 모른다. 혁신에는 많은 노력과 투자가 따르는 법이다.
최근 북한핵협상의 지지부진한 결과와 미국의 비성적인 방위비 대폭 중액요구등으로 우리의 핵보유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핵을 보유하는 것이 우리에게 타당하거나 옳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핵을 보유하지 않으면 누군가의 핵위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줄 핵우산이 필요한 나라가 된다. 즉, 우리의 자주국방과 자주권은 일정부분 양보해야 한다. 일찌기 프랑스의 드골대통령도 핵을 보유하지 않은 나라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자체적인 핵무기개발에 착수하여 기어코 원자폭탄에 이어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하고 만다. 프랑스의 영관을 재현하고자 했던 드골다운 발상이고 행동이다. 그러면 모든 나라들이 핵폭탄을 보유하는 것이 좋은가? 아마도 이 경우, 핵전쟁의 위협은 훨씬 높아 질 것이며 핵 전쟁으로 인한 대량살상 내지 전 지구적인 파멸을 가져올 지도 모른다.
이기적인 개인들의 극단적인 행동은 그 자체가 선이라고 해드래도 반드시 공동선을 보장하지 않는다. 부분과 전체의 최대공약수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