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랫만에 공중목욕탕에 다녀왔다.
내고향은 김해지만 초등학교 시절을 빼곤 주로 부산에서 학교를 다녔고 부산에서 주로 성장했다. 부산 생활의 대부분을 동래 온천장에서 지냈다. 동네 이름도 온천동. 집안이 넉넉하지 못해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어린시절 온천목욕탕에 한달에 한.두번은 간 것 같다. 동래 온천장은 일제시대에 온천휴양지로 개발되어 부산에서도 해운대와 더불어 2대 온천이지만 해운대의 온천물이 고갈된 지금은 부산에서 유일한 온천이다.
지금이야 전국에 유명한 온천이 많이 개발되었고 또한 아파트 생활을 하니 대부분 집에 목욕탕이 있어 집에서 목욕을 하는 추세라 온천이 그렇게 각광을 받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더구나 동래 온천은 일제시대에 개발되어 장기간, 그리고 과도히 온천수를 뽑아 올리다 보니 온천수의 분출량이 줄었고 이를 이용하는 대중목욕탕과 숙박시설등이 많이 들어서서 이들 업소에 온천수를 배급하다보니 온천수의 질도 떨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온천마니아들과 온천장 주변사람들은 여전히 온천을 즐기고 있으며 특히 명절이면 귀성한 외지인들까지 명절맞이 세신을 하느라 주변 목욕탕은 붂적인다.
대학 졸업 후, 생활의 근거지를 서울로 옮긴 후 거의 40년 가까이 명절이면 어머님과 형님이 계신 부산으로 간다. 마침 제사를 모시는 형님댁과 어머니댁이 아직 온천동이라 귀성만 하게되면 꼭 대중온천탕에 들러서 목욕재계(?)를 한다. 필자의 사춘기시절과 청년시절에 자주 이용했던 현대탕, 천일탕, 녹천탕등 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목욕탕들이 아직도 건재하며 영업을 하고 있다. 정말 반가운 일이다. 오래된 목욕탕 인근에는 농심그룹에서 운영하는 엄청나게 큰 온천목 욕테마파크라고 할 허심청도 있다.
명절 새벽에도 영업을 하는지라 일찍 일어나 목욕탕에 들어가니 그 시간에도 만원이다. 정말 목욕재계하고 명절제사를 모시려는 분이 많나보다. 여기도 늙수그래한 사람들이 훨씬많다. 요즘 세태를 반영하듯 반문신, 전신문신을 한 사람들도 보인다. 중늙은이들의 대부분은 필자처럼 복부가 과도히 나온 과잉발육된 사람들이다. 근육은 없고 처진 살만 많다. 세월의 흐름이 처진 뱃살과 쭈글쭈글한 주름에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처진 뱃살과 주름진 얼굴이라도 말끔하게 씻으면 기분이 좋다.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사지가 노곤해지고 열기로 흘린 땀으로 노폐물이 다 빠져 나가는 기분이 들어 괜히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우리가 씻어야 할 것은 몸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언젠가 돌아가신 아버님이 절은 목욕탕이라고 한 적이 있다. 온천장 목욕탕은 세신(洗身)을 하는 곳이라면 절이나 교회는 세심(洗心)을 하는 곳이리라.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란 우리는 여름한철 벌거벗고 물가에서 놀던 때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목욕을 하는 것은 명절 때나 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의 여름한철 물놀이는 목욕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행운아였다.
요즈음 우리는 한겨울에도 거의 매일 목욕을 한다. 우리의 몸은 정말 깨끗해졌다. 미용산업은 엄청나게 커졌다. 모두들 자신의 몸을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하여 엄청나게 노력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데는 얼마나 투자를 하고 잇는 것일까? 심지어 절이나 교회까지 가서도 마음이 더 더러워져 오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