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최고선에 대해서 얘기하였지지만 너무 철학적이고 이해하기도 쉽지 않는 것 같다. 더구나 최고선은 우리의 일상생활에 적용하기도 어렵다. 매일의 일상을 단조롭게 살아내고 있는 우리네에게 최고선은 쉽게 와 닿는 개념도 아니다.
그래서 내나름대로 연구하고 사색한 일반적인 선행에 대해 몇자 적어 보고자 한다. 한자어 "善"을 우리말로 풀이하면 착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일컬어 착한 사람이라거나 선한 사람이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거나 적어도 악행을 할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러면 착하다는 말은 적극적으로 선행을 많이 하거나 소극적으로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를 말하는 것일까?
혹자는 선행이란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즉,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안전, 쾌락.이익등을 추구하는데 이에 반하는 이타적 행위를 선내지 선행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하고 보니 인간은 애초에 모두 악하다는 성악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기적인 것이 악이라고 볼 수 없다. 다만 이타적인 것이 선인 것만은 분명하다.
선행은 크게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절이나 교회를 짓는데 헌금을 하는 것이 선행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물을 나누어 주거나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는 행위는 선행으로써 칭찬받아 마땅하다. 양자는 공히 물질적인 것이다. 또한 지하철에서 자기의 자리를 노약자에게 양보하거나 길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외국인에게 친절히 길을 안내해 주는 행위, 지치고 힘든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동네주민에게 미소지으며 인사하는 행위도 상대방을 기분좋게하는 것으로 비 물질적인 선행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無財七施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한편 선행은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를 떠나서 댓가를 바라지 않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경제학적으로 말해 아무 조건없이 자신의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역시 세속적인 경제학의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은 조건없이 자신의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는 행위 위에 그 행위 결과에 대해서도 은근한 댓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재산을 기부하거나 헌금을 하거나 재능기부를 할 때, 이 행위가 가져올 신분이나 위신의 상승, 명예의 획득 등을 바라고 선행을 한다면 이는 진정으로 선행을 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인기인이 행하는 보여주기식 선행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면 이타적이고 댓가를 바라지 않는 행위만이 선행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기적이지만 댓가를 바라지 않는 행위나 이타적이지만 댓가를 바라는 행위는 선행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인가? 세상이 복잡해지고 가치기준이 다양해지면서 선.악의 구분도 다소 모호해 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며 선.악으로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의 도덕적 기준을 가져야 할 것이며 자신의 도덕적 바탕위에 正義라는 또 다른 잣대를 행위의 준칙으로 삼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의 행위는 선행인가? 나의 행위는 정의로운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쉽게 표현하고자 했는데 또 이상하게 되었다. 부족하드래도 그냥 받아들이고 베풀면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