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일부터 15일에 걸쳐 동유럽 몇개 나라와 독일. 이태리를 다녀왔다. 내 인생에 가장 긴 휴가이자 여행이었다. 여행 명분은 작년에 지나간 결혼 30주년 기념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주재하고 있는 삼성후배네에서 마지막 주재기간에 꼭 방문해서 같이 유럽의 가을을 느끼며 골프를 치자는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프랑크푸르트를 도착지와 출발지로 하는 일주일짜리 여행상품을 구매했다. 그 여행사의 팩키지 프로그램으로 우리는 동유럽의 몇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독일이 우리나라보다 7시간이나(원래 8시간 늦으나 유럽의 섬머타임 실시로 7시간 차이가 난다.) 늦은 관계로 인천에서 오전 12시에 출발한 비행기가 FRT공항에 도착한 것은 당일 오후 4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우리는 FRT공항을 빠져 나오자마자 관광버스를 타고 첫번째 관광지인 뮌헨 근처로 이동했다. 약 3시간을 가까이 달려 뮌헨에서 1시간정도 떨어져 있다는 소도시의 조그만 여관에 여장을 풀었다.독일이 선진국이라 예산을 감안한 숙소이리라. 방은 좁고 침대는 좁았지만 예의 독일 여관주인의 검소함과 깨끗함이 느껴졌다. 목욕타월은 끝이 헺져서 너덜너덜했지만 깔끔하게 세탁이 되어 있었고 방은 작았지만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10월초인데도 밤공기는 싸늘했다. 더구나 방은 난방이 전혀되지 않아 가져간 두꺼운 티쎠츠와 겨울 츄리닝바지를 입고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고 옆자리의 부인은 총기있게도 휴대용 전기매트를 친구에게서 빌려왔다. 여자들의 준비성이란......
다음날 아침6.7.8로 시작했다. 6시기상, 7시조식, 8시출발이다. 깔끔하긴 하지만 맛없는(?) 독일식 식사를 하고 우리 일행은 뮌헨시청사 관광에 나섰다. 아침부터 부슬비가 내려 날씨는 우중충하다 못해 을씨년스럽다. 하지만 관광버스를 타고 도착한 뮌헨시청 광장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토요일의 치청광장과 인근의 성당은 거의 절반이상이 관광객인 것 같다. 동양에서 온 관광객은 주로 중국과 한국인으로 보이며 서구의 관광객도 꽤 섞여 있는 것 같다. 10월초인데도 비가 오니 날씨가 아주 쌀쌀하다. 한국에서 10월초로 상상하고 셔추에 얇은 점퍼를 준지해간 우리는 결곡 뮌헨의 상점에서 방한 점퍼를 한나씩 장만했다. 그런데 마침 뮌헨에서 열리고 있는 맥주 축제인 옥토버페스트의 마지막 주일이라 바이에른 지역의 민속의상을 입은 젊은이들이 꽤 많이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옥토버페스트 열리는 주간에 뮌헨에 갔는데도 정작 이 축제에는 참석하지 못하고 수박 겉햝기식 관광을 하고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백조의 성이 있다는 퓌센으로 향했다. 뮌헨에 가면 비운의 시인 전혜린의 자취가 남아 있을 슈바빙거리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퓌센에서 루드비히 2세(?)가 지었다는 아름다운 노바인슈타인성을 역시 짧게 관광하고 이웃 오스트리아의 짤쯔부르그로 향했다. 노바인슈타인성은 디즈니만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아름다운 성으로 동성애자였다는 루드비히 2세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지진다.
저녁에 도착한 짤쯔부르그. 짤즈가 소금이고 부르그가 타운이니 소금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는 온통 모짜르트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모짜르트가 살았던 곳, 다녔던 카페, 연주한 곳, 그리고 모짜르트가 먹었다는 초코렛. 소금광산도 폐광되고 나니 도시전체가 모짜르트를 이용해서 먹고산다. 그리고 우리가 어렸을 때 동경심을 한껏 자극한 "사운드 오브 뮤직." 아직도 그 촬영한 장소와 성당등이 고스란이 남아있다. 가이드에게 호숫가에 있었던 대령의 멋진 저택은 안가냐고 하니 짤쯔부르그에서 한시간이나 떨어져 있어 일정상 갈 수가 없단다.
다음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궂은 날씨속의 알프스 산록을 따라 그림같은 짤쯔캄머굿으로 향했다. 잘 가꾸어진 초록의 풀밭과 목장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와 양들, 그림같이 예쁜 빨갛고 하얀 집들, 그리고 계곳 사이로 나타난 맑고 깨끗한 호수들...... 동행한 부인은 연신 감탄의 목소리를 쏟아낸다. 오스트리아에서 살고 싶다고. 알프스 산길을 꼬불꼬불 달려 도착한 짤쯔캄머굿. 커다란 호숫가에 알프스식으로 지은 집들이 그림처럼 떠 있다. 아름다운 자연에 멋진 사람들이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호수와 점점이 보이는 영봉들, 흐린 구름 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파란 하늘은 이곳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신선이 사는 곳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한다.
저녁에 도착한 비인도 우울하게 비가 내렸다. 아침에 본 쇤브룬궁전 역시 우중 관광이다. 깔끔하고 맵시있는 황색의 궁전. 오스트리아제국을 최극성기로 만든 마리아테레지아 여왕이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을 본받아 지었단다. 그러고 보니 궁전 뒤의 정원이 모방한 냄새가 난다. 하지만 실내는 베르사유 못지 않게 화려하다. 중국 청나라에서 수입하여 치장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끈다. 오스트리아 제국을 융성하게 한 것은 합스부르그 왕가의 정략결혼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정말이지 합스부르그 왕실의 엄청난 다산은 국토와 권력을 가져다 주었다.
중세 이후 동유럽은 갈기갈기 찢어져 힘을 쓰지 못했던 독일을 대신하여 오스트리아가 맹주노릇을 하려고 하였으나 먼 동쪽에 있는 터키 역시 동유럽의 여러 군소민족들을 압박하여 오스트리아와 경쟁관계에 있었다. 걸국 두나라는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세르비아등을 경계로 하여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근대에 들어 독일이 프로이센을 주도로 하여 통일을 하고 그 세력을 동쪽으로 확장하면서 이 지역에 분쟁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현대의 역사는 우리가 아는 바 대로다.
비인에서 동남쪽으로 옥수수와 해바라기. 밀등이 심겨져 있는 평원을 달려 300키로 정도 가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가 나온다. 당초 이지역에는 켈트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8세기경부터 동쪽에서 훈족(흉노족의 일파?)가 들어 와서 자리를 잡았단다. 흉노족이라면 아시아 인종이 아닌가? 그래서 헝가리 사람들이 유럽에서 유일하게 우리와 같이 이름을 부를 때 성을 먼저 쓴다고 한다. 헝가리란 이름역시 훈족의 나라라는 뜻인 것 같다.
부다페스트는 구시가인 부다와 신시가지인 페스트가 합쳐진 도시인데 다뉴브강을 끼고 동서로 마주보고 있다. 부다쪽에 위치한 겔레르트 언덕에서 바라본 이 도시의 전경은 정말 아름답다. 왕궁과 요새와 성당과 성채들..... 곡선으로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고풍스런 석조건물들이 적당한 높이로 조형미를 뽐낸다. 유람선을 타고 강을 오르내리며 밤에 본ㄴ 무습은 정말 아름답다. 시정부에서 환하게 조명을 밝혀 놓은 근대식 국회의사당은 왕년에 교토에서 본 금각사를 연상시키는 황금색이다. 이 모습을 보려고 얼마난 많은 사람들이 이 도시를 방문하는가? 우리가 도시조경을 잘 해야하고 문화유산을 잘 보존해야 하는 이유다.
부다페스트를 뒤로 하고 방문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 한나라의 수도답지 않은 시골 도시다. 체코와 같은 슬라브 민족인데 20여년전에 체코와 분리되었다. 분리전 체코슬로바키아 시절, 부유한 체코 지역으로부터 천덕꾸러기 대우를 받다가 자존심이 상해서 독립했단다. 체코어와 슬로바크어가 다르다고 하니 인구 5백만의 이 나라도 충분히 독립할 명분은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나라는 유로화를 쓴데 체코는 자국통화가 있다.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며 그 화려함이나 번화함에 있어 브라티슬라바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고색 창연한 고딕 건물과 성당들, 좁지만 운치있는 블타바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 그 위의 성인들 동상. 가톨릭의 신성타락과 부패를 루터보다 100년이나 먼저 고발하다 화형당한 교회개혁의 선구자 얀 후스가 체코인이다. 이 작은 도시에 한국에서는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연속극이 히트를 치면서 직항로까지 생겼단다. 물론 대부분 한국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비행기들이다.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체코의 역사는 영광의 역사라기보다 굴욕의 역사다. 하기야 말을 달려 조그만 강만 건너면 얼마든지 진군할 수 있는 유럽의 지형에서 국경이란 민족이전에 힘의 논리에 의해 그어 졌으리라.
이번 동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이 지역에는 여전히 게르만-특히 독일의 힘이 강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초적인 경제이론에 의하면 한나르이 국제수지가 계속 흑자를 이루면 언젠가는 자국통화를 절상할 수 밖에 없다. 과거 플라자 합의시에 엔화와 함께 마르크화의 급격한 절상이 일어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이제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유로화를 사용하고 있으니 독일은 적어도 유로권내에서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고 이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유럽의 공장은 독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확인하게 된다.
앞으로의 유럽, 어떻게 될까? 더 통합으로 갈까? 아니면 분열로 갈까? 역사는 반복되는 것, 내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외부적 요인도 분열의 조짐을 보인다. 아랍 민족의 대이동과 증대되는 빈부격차가 그 큰 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