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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여행

aspakang 2014. 8. 12. 15:51

이번 여름, 휴가를 겸해서 친구들 부부와 인도여행을 다녀왔다. 혹자는 여행과 관광의 구분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살던 곳을 떠나 타지로 유람을 떠나는 것을 여행이라고 하고 단순히 다른 지방이나 외국의 풍경이나 풍물을 구경하고 즐기는 것을 관광이라고 한다는데 여행사 상품을 구매해서 소위 팩키지여행을 다녀왔으므로 필자가 다녀온 것이 여행이라기 보다는 관광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여행을 관광이라고 할 수 없고 어쩐지 여행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은 것은 왜일까? 사람들은 인도여행에서 아름다운 경치나 유물.유적보다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더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와서 때문은 아닐까?


최소 6명은 모여야 출발한다는 팩키지상품을 다행히 우리 고등학교 동기부부, (실은 한커플은 결혼예정자)가 3쌍이라 최소인원으로 출발하였다. 최소 인원이라 한국에서 여행가이드가 따라붙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현지인이 합류하는 방식이었다. 보통 가이드가 현지에서 합류한다해도 현지에 사는 교민이나거나 유학생일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여행의 우리 가이드는 한국말을 하는 인도인이었다. 삼성전자 수원공장에 삼년정도 근무한 IT기술자라나.... 어쨌든 본인이 브라만계급출신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했다.


7월31일 저녁 8시20분 인천발 델리행 아시아나항공 여객기는 미국에서(?) 오는 연결편이 지연도착하는 바람에 출발부터  1시간반이상 지연되어 이륙했다. 하지만 기장이 중간에 운항속도를 많이 올렸는지 도착시간은 40분정도밖에 지연되지않은 2시20분경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우리는 출발할 때 비자를 받지않고 도착지에서 바로 비자를 받기로 하였으므로 내리자마자 관광 비자발급 창구에 줄을 썼다. 항상 여유를 부리는 성격탓에 우리부부가 맨 마지막에 비자신청을 하였는데 문제는 우리앞에서 신청한 스님에게 문제가 생겼다.


스님은 올해에도 벌써 4번이나 인도를 다녀갔으며 그간 수많이 인도를 방문하였으며 한번 올때마다 거의 한달정도를 머물렀다는 것이다. 더구나 그간 비자청구이유에는 비지네스 목적도 있어 혼란스러웠다. 스님말씀은 몇년 전 인도여행비자 발급이 어려워 서울에서 여행사가 그렇게 비자를 냈다는 것이며 자기가 인도에 이렇게 자주 오는 것은 불교포교나 비지네스 목적이 아니라  한국에서 오는 명상팀과 합류하여 이를 지도할 목적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같이 따라 온 여대생도 이런 목적이라고 더듬거리는 영어로 설명했으나 비자담당관은 의심의 표정으로 발급불가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결국 내가 나서서 별로 유창하지 않은 영어로 상세히 설명하였으나 진척이 없었고 스님의 비자신청은 일단 보류하고 우리부부의 비자를 먼저 처리해 주어 장장 30분에 걸친 우리의 비자발급이 이루어졌다.


덕분에 동행들은 30분 이상을 밖에서 대기해야 했고 연착으로 늦어진 도착시간에 비자발급 시간까지 늘어져 우리는 새벽 호텔 체크인은 다섯시 정도에 이루어 졌다. 이후 1시간 정도 자고 기상하여 아침밥을 호텔부페로 먹고 바라나시(Varanasi)향 비행기를 타기위해 호텔을 나섰다.


바라나시! 여행중의 여행, 인생의 마지막에 꼭 가 보아야 할 여행지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고 신과 인간과 동물이 함께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장소다. 어머니의 강이라는 갠지스강, 현지어로 강가(Ganga)라고 한다. 불경에 수도 없이 나오는 항하다. 이곳에 도착하기 위해 우리는 밴을 타고 앙상한 체격의 인력거꾼이 페달을 밟는 릭샤를 타고 다시 내려 한참을 걸어갔다. 걸어가는 중간중간 우리는 길 한가운데 웅크리고 앉아 있는 신성한(?) 소와 그들의 배설물을 피해야 했다. 그런데 소똥 색깔이 내가 알고 있는 갈색이 아니라 노란색이었다. 도시의 소들이 풀을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쓰레기와 사람들이 주는 바나나등을 먹다보니 풀이 소화되고 산화되어 나오는 색깔이 아니라 잡식성인 사람들의 변색깔과 비슷한 것 같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요리조리 똥을 피하다고 결국 일행 중 나만 똥을 밟고 말았다.^^


Ganga는 신성한 강으로 사람들은 이 강물에 몸을 씻어 자기의 죄와 업보가 사라지기를 바라고 이 강물에 자기 시신이 뿌려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노인들은 이곳에 와서 최후를 맞이하기 위해 죽음여행을 오는 것이며 이곳의 강가에서 화장되어 한줌의 재로 산화하여 어머님 강의 품속으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도착해서 보니 강의 폭은 서울의 한강보다 넓지 않은 것 같은데 유속은 상당히 빠르다. 우리가 도착한 강의 반대쪽은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강가의 수많은 계단과 건물은 옛날부터 인도 각 지방의 왕들이 갠지스강을 방문하여 몸을 씻고 자신의 시신을 화장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나역시 신성한 물에 발을 담그고 신발에 뭍은 소똥을 씻어내고 손을 씻었다.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갔다. 강 가운데에서 보니 많는 계단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몸을 씻고 목욕하고 빨래를 하고 있다. 일부 돌출된 구조물이나 바위위에는 힌두교 수행자인 사두들이 참선자세로 앉아서 수행하고 있다. 건너편 화장장에는 몇 무더기의 불길이 치쏫으며 시체를 태운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고인의 마지막길을 축원하고 있으며 뒤에는 꽃으로 단장한 관들이 화장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인다. 뱃머리를 돌려 강을 거슬러 올라가니 보다 옅고 밝으며 좀 더 원색인 건물들이 보인다. 남인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목욕하고 화장하는 장소란다. 인도사람들은 크게 남인도와 북인도로 구분해서 말하는 것 같다. 북인도는 아리아인들이 많이 살고 남인도는 드라비다족이 주로 산다.


배에서 내려 정말 복잡하고 어려운 바라나시의 미로를 따라 전단나무 염주를 사기위해 가이드가 소개하는 전문점으로 향했다. 그 좁은 골목길에도 예의 소들은 앉아 있었고 오토바이까지 빵빵거리고 달렸다. 정말이지 인도에서는 클락숀 울리는 소리에 진저리가 날 정도다. 심지어 트럭뒤에는 제발 빵빵거려 달라고 "Please Honk 니 Blow Horn"이라고 써 붙이고 다녔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바쁘거나 사정이 있으면 빵빵거려 당신의 존재를 알려 달라고 한다는 것이다. 길 한가운데 앉아 있는 소에게는 빵빵거리지 않아도 사람들에게는 빵빵거리니 인간보다 소가 더 소중한 존재가 아닌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바라나시를 벗어나 부처님의 최초 설법지인 사르나트(녹야원)를 방문했다. 바라나시에서 차로 30분 정도 걸렸다.룸비니, 부다가야, 쿠시나가라와 더불어 불교 4대성지 중의 하나다. 부처님 당시에는 많았다던 사슴은 보이지 않고 아쑈카왕 시절 건설했다는  거대한 스투파와 당시 불법을 가르쳤던 강당과 기숙사터가 녹지 공간에 펼쳐져 있었다. 주변에는 불교국가인 스링카, 대만등에서 지은 절도 보인다. 근처에 한국절도 있다고 하여 방문해 보니 초라하고 볼품이 없다. 잘 보이지 않는 주택가 안에 시멘트로 대충짓고 원색으로 녹야원이라고 현판을 붙였는데 현관에 통도사분원이라고 써 있었던 것 같다. 주지스님은 출타중이라 보이지 않아 법당에 가지고 간 공양물을 올리고 나왔다.


이어서 카주라호로 가기위해 바라나시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비행기가 2시간 가까이 연착을 하는 것이다. 출발지인 델리에 비가 와서 그렇다고 한다. 그 사이에 항공사에서 나누어 주는 간식을 먹고 아줌마들은 공항 상점에서 인도식 소위 똥싼바지를 단체로 하나씩 샀다. 그러고서 탑승했는데 이번에는 탑승한 비행기가 한시간이 지나도 출발하지 않는 것이다. 왜 이륙하지 않는지 이유를 설명하는 기내 방송도 없다. 결국 내가 여객기 맨뒤 승무원 대기석에 앉아 있는 승무원에게 이유를 따져 물었드니 비행기 중간 기착지인 아그라에 비가 와서 비행기가 못 뜬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 언제 왔는지 유럽에서 온 단체여행단의 가이드가 한마디 던졌다. "아그라에 전화했드니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비가 짐작에 그친 모양이다. 그러자 이 승무원이 기장에게 달려갔으며 이내 비행기가 이륙했다. 우리가 기장 보다 더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나 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카주라호의 오후 일정은 자동 취소되었다. 이튿날 일찍 아침밥을 먹고 전일 못다본 카주라호의 힌두교 사원과 옛성곽, 자이나교 사원등을 둘러 보았다. 카주라호의 힌두사원은 비슈누신을 위해 지어진 것인데 비슈누신은 브라흐만, 시바신과 함께 힌두교 3대신으로 우주와 이 세계의 유지. 보호를 담당하는 온화한 신이다. 한두교에 따르면 비슈누신은 물고기, 거북, 돼지등 열가지의  화신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부처님도 그 9번째 화신이라고 한다.  이 화신이 아바타다.


카주라호의 비슈누신을 모시는 사원은 그 벽면 조각이 카마수트라에 나오는 온갖 종류의 성행위 묘사로 유명하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체위들이 조각되어 있었다. 중늙은이 부부인 우리들은 부끄럼도 잊은 채 과거 인도인들이 즐겼을 모습을 보며 왜 이런 조각을 이렇게 사원벽에 새겼는지 안내원에게 불어 보니 그 대답이 재미있다. 옛날 이 지방의 처녀가 강간을 당해 너무나 억울해서 비슈누신에게 모든 사람들이 섹스를 하지 못하도록 빌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슈누신이 이 처녀의 소원을 들어 주었더니 이제는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낳는 것이었다. 그 기간이 15년. 수 없이 왕이 온갖 종류의 체위를 묘사하는 장면을 비슈누신의 사원에 조각하고 비슈누신에게 빌어 다시 사람들이 섹스를 하고 애기를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방의 사원과 고성을 방문하고 우리는 그 유명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로 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Jhansi 라는 도시로 갔다. 그곳에서 아그라를 경유해서 델리로 가는 특급열차를 타기로 하었다. 그러나 역시 기차마저 2시간 가량 연착되어 우리는 무덥고 냄새나는 잔시역에 부채로 더위를 식히며 거지아이의 공연을 보기도 했다. 인도의 기차는 광궤열차다. 기차를 타려고 플랫폼으로 들어서며 철로를 보니 엄청나게 큰 쥐들이 선로사이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먹으러 어슬렁거리고 있다. 플랫폼에서도 기다리기를 30여분. 마침내 기차가 기적소리 요란하게 들어오고 사람들은 앞다투어 객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는 짐이 많아 역시 마지막에 승차하게 되었는데 아뿔싸! 내가 신은 슬리퍼 한짝이 선로와 객차사이의 난간에 빠지고 말았다. 와이프의 뒤를 따라 객차에 올랐으나 먼저 탄 동료들이 짐을 정리하는라고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난간 한쪽에만 발을 걸치고 있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난감해서 밑을 보고 있어더니 한 인동인 옆사람이 들고 있던 지팡이를 낚아채서 좁은 공간사이에 넣어 보았으나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바야흐로 밤 8시가 넘어 깜깜한데 선로 밑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결국 잠깐을 생각하다고 포기하고 지정 좌석에 앉았다. 같이 간 동료가 한짝을 잃어 버렸으면 나머지 한짝도 버리고 오는 것이 도리라고 빈정거렸는데 생각해보니 틀린 말도 아니다. 잃어 버린 각각의 한짝은 결국 쓸모없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때, 건장하게 생긴 인도인 두명이 나의 잃어버린 한짝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나타났다. 인도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다고 하드니 정말이었다. 너무도 고마워 얼마를 줘야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100루피를 주란다, 우리돈 2000원 정도. 얼떨결에 이돈을 주었더니 고맙다면서 잽싸게 객차를 내려갔다. 고마운 인도인들. 결국 우리는 아그라의 호텔에 예정시간보다 3시간 가량  늦은 11시 10분경에 도착. 호텔도착 시간을 가장 근접하게 맞춘 친구에게 10불씩을 주기로 내기를 걸었는데 내가 20불을 따서 남는 장사를 하다.


다음날 우리는 타지마할을 보러 나썼다. 워낙 유명한 건물이라 아침인데도 사람들로 인산인해. 순백의 대리석으로 만든 구조물이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답고 당당하게 서있다. 20여년전 회사생활을 할때 출장와서 잠깐 보았을 때는 큰 감동이 없었는데 이번에 여유를 가지고 보니 그 우아하고 장엄한 기품에 압도된다. 대리석에 조각을 하고 그 사이사이를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토파즈등 각종 보석을 박아 넣었단다. 샤자한 제왕이 둘째부인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덕분에 샤자한왕은 후임 제왕인 첫번째부인의 아들에 의해 야무나강을 사이에 두고 타지마할 건너편에 있는 아그라성에 유폐되었다.그기서 타지마할이 마무리되는 것을 쓸쓸히 바라보다가 타지마할이 완성되자 이내 죽어서 같이 이곳에 같이 뭍혔다고 한다. 애잔한 순애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한사람의 무덤조성을 위해 수많은 백성들을 노역시킨 고역의 제단이라고 해야할지..... 덕분에 인도는 짭짜란 관광수입을 올리고 있다. 입장료의 내.외국인 차이가 50루피와 750루피 무려 15배다.


타지마할에 이어 아그라성을 보고난 우리는 마이크로 버스를 타고 긴 육로여행을 했다. 창가로 펼쳐지는 북인도평원의 광활한 대지, 여름이라 그런지 세차게 비까지 뿌린다. 예의 도로에는 여전히 소가 한가히 앉아 있고 간간히 소떼와 양떼가 보인다. 사람들은 류시화시인이 인도여행기에서 자주 언급했듯이 도로옆에서 태연히 대소변을 본다. 끝없는 대지에 심겨져 있는 것은 옥수수같다. 그런데 차가 우리의 목적지인 Rajastan주의 수도 Jaipur에 가까와지니 풍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초원이 아니라 산이 보이고 바위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낙타가 보인다.


Rajastan은 이름 그대로 Raja의 땅이다. 아직도 Raja(왕)가 있으며 옛성의 한귀퉁이에서 왕족들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인도는 복잡한 나라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당시 수상이던 네루는 인도의 모든 지방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하여 각 지역의 자치권과 기득권을 최대한 보장하였다고 한다. 덕분에 아직 라자도 존재하고 각주들은 많은 자치권을 보유하고 있다. 자이푸르는 몬순지역과 건조지대의 중간에 위치한 것 같다. 이곳에는 우기에는 비가 내리지만 건기에는 아예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더 서쪽으로 가면 사막지대다. 자이푸르의 아름다운 호텔 Le Meridien에 여장을 풀었다.


대부분의 Jaipur 성곽이나 궁전등의 색깔은 풁은 색이다. 그래서 이 도시의 슬로건도 Pink City란다. 산위의 성과 궁전, 그리고 16세기에 만들어졌다는 과학 박물관을 관광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몬순지역과는 또다른 환경이다.여기는 건조한 지역에서 제조하는 각종 양탄자와 스카프등이 많이 팔리고 보석류도 많아 생산된다고 한다. 우리도 가이드의 도움으로 상점을 방문하였으나 너무 음침하고 도둑의 소굴같은 분위기라 모두 손을 내젓고 나왔다. 그리고 오후시간을 이용하여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Ayurveda 안마를 받으러 유명하다는 안마시술소를 방문하였다. 골목골목을 돌고 묻고물어 방문한 곳은 번듯한 간판을 내건 업소가 아니라 주택가 후미진 곳에 있었다. 적지 않은 금액을 내고 가는 곳이라 기대를 하였는데 안내된 방은 너무 구저분했다. 결국 남자들은 안마를 포기하고 어깨,허리등이 좋지 않다는 여자들만 거금 60불의 비싼 안마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같은 소형버스를 타고 우리는 최종목적지인 델리로 향한다. 델리는 기존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Old Delhi라 영국인들이 들어 와서 새로 건설한 New Delhi로 나뉜다. 인도의 행정 중심지이며 뭄바이와 더불어 비지네스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빌딩과 의회, 행정부건물. 대통령관저 등 현대식 건물은 모두 뉴델리에 있다. 반면에 올드델리에는 얫 건물과 왕궁. 사원-특히 오래된 이슬람사원이 눈에 뛴다. 올드델리는 바라나시와 거의 비슷하게 다 쓰러져가는 건물과 오물과 쓰레기가 넘쳐났다. 


인도는 어디를 가나 종교이야기를 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인도에는 잘 알려지다시피 크게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가지의 계급이 있다. 이중 브라만 계급이 18%, 크샤트리야 계급과 바이샤계급이 각각 30% 정도되고 수드라 계급이 20%정도 된다고 한다. 브라만 계급이 이렇게나 많은 줄은 인도에 와서 처음 알았다. 수드라계급은 특별히 애들 교육비등이 무상으로 지급되며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느 힌두교도에게만 적용된다. 따라서 힌두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슬람교로 개종하면 될 것같다. 적어도 이슬람교에서는 이런 계급은 따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에 이슬람교도가 2억명이 넘게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언젠가 최하층민 출신 지도자 암베르카드가 백만명의 하층민을 동시에 계급차별이 없는 불교도로 전향시켜서 큰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불교는 자이나교와 더불어 인도에서는 극소수파다. 차라리 힌두교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시크교도가 3~4% 정도 된다고 한다. 인도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이도 적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가 본 시크교사원에서는 매일 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료 급식을 제공한다고 한다.


자신이 브라만 출신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한 우리 가이드는 자기는 사람들을 쳐다 보기만 해도 무슨 계급 출신인지를 구별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성직자, 학자, 교수, IT기술자, 각종 전문직 종사자들은 대부분 브라만 출신이란다. 그러고 보니 실리콘밸리의 IT전문가들이 주로 인도사람이라는 얘기를 들어 본적도 있어 인간의 자존심내지 자부심이 자기성취나 자아실현을 위한 큰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운명에 안주하고 남에게 의존하는 인생에게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무더운 여름날의 길지않은 8박9일간의 주마간산식 여정이었지만 인도여행은 나름 내인생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의미있는 여행이었다고 자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