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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aspakang 2013. 8. 2. 12:22

요즘 부동산 가격이 대세 하락기에 접어든 와중에 전세값이 매매대금의 60%를 넘어섰다고 난리다. 과거의 예를 보면 전세대금이 매매가격의 55%를 넘어서면 부동산 특히 아파트.주택가격이 상승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제 이 이론마저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 다수의 경제학자와 경제분석가들은 전세에 대해 잘못된 견해와 이론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으며 특히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무지와 잘못된 부동산 정책은 이해할 수가 없다. 아무리 정치가 국민의 여론과 인기를 먹고 산다고 하지만 자신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신자유주의의 근본이념을 부정하는 이중적 태도에는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필자는 90년대에 해외 주재근무를 몇년 한 적이 있다. 당시 우연한 기회에 현지인과의 대화에서 한국의 아파트가격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중 한국의 전세제도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놀라운 반응이 생생히 기억된다. 집주인이 세금도 다 내고, 설비가 고장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수리도 다 해주는데 집값의 30% ~40% 수준의 보증금만 받고 집을 빌려 준다고 하니 필자더러 "Are you crazy or something?"라고 하는 것이다. 집주인이 미치거나 자선사업가가 아니라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집이라는 것이 보통 상업지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택지구에 있어 특별히 지구변경이나 획기적인 개발계획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세월이 지나면 낡아서 수리가 필요하고 감가상각이 되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일반적인 재화와 다를 것이 없다. 즉 현재 현금화할 수 있는 가격보다도 현저히 싼 금액으로 세금.수리비까지 부담하면서 제3자에게 독점적사용권을 부여하는 행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는 기본적으로 부동산 "상승신화"(부동산은 사 놓기만 하면 언제나 가격이 올라간다는 법칙아닌 신화)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집주인 역시 과거 지금의 전세값 정도로 그 집을 구입했을 것으로 추정될 지도 모른다. 더구나 집주인은 새로 집을 사서 얼른 전세를 놓고 그 몫돈으로 다시 집을 사 놓으면 두채 모두 가격이 올라가서 소위 2배의 레버리지 효과를 볼 수 있었으니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하여 보유세와 대출이자를 감당하기에 버거운 소유자가 증가하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미 올라버린 가격으로 주택을 구입하였고 또 구입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전세보다는 반전세, 그것보다는 월세를 선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이기적.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나온 추세이므로 피할 수 없는 대세다. 하기야 이 지구상에 전세란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필자가 알기로 한국밖에 없다.

 

신자유주의를 추종하고 그것을 정책기조로 내세우고 있는 현재의 주류경제학자들과 정부에서는 당연히 이 대세를 인정하고 전세제도 자체가 사라지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에서는 전세가안정을 외치고 있고 주류경제학자들은 침묵내지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다. "보이지 않는 손"의 조정에 의해 집값이 떨어지든지 전세값이 집값이상으로 올라 가든지 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주택보급율은 100%를 넘어 섰다고 한다. 사실상 집이 모자라지는 않는다는 얘기이며 누군가는 두채 이상을, 누군가는 한채도 못가지고 있을 뿐이다. 주택은 모든 국민들의 기본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주거의 장소이다. 그렇다고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주택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최소한의 주거공간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 "최소한"이라는 단어의 정의에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누구나 더 안락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에서 잠자고 생활하기를 원한다. 최소한의 주거공간 보장이라는 정책목표 이외에는, 신자유주의 이론에 입각하여, 주택시장 역시 시장의 자율에 맡길 시점이 온 것이다.

 

과도한 대출에 의해 주택가격이 유지되어 온 것이라면 주택가격이 떨어지는 것이 맞다. 물론 현 상황이 그리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필자도 공감한다. 국내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은행 대출을 끼고 있으니 급격한 집값의 하락은 이나라 대부분의 중산층을 나락으로 내몰 것이며 아울러 부동산 담보 대출에 편승해서 이익을 취해 온 은행권의 괴멸을 가져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집값이 국민소득수준 대비 과도히 놓다는 사실에는 모두 공감하고 있다.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부동산 가격의 안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를 소멸시켜야 한다. 가격 하락 못지 않게 거래 절벽이 더 문제다. 거래세의 인하는 불가피하다. 급격한 가격하락을 막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국내 건물.주택 취득을 자유화해야 한다. 또한 주택 괸련 대출에 대한 중앙은행의 이자율 인하 조정은 고려해 볼 만하다.